
김환기(1913-1974) 의 화집 중
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(1970)
1970년. 고국을 떠난 지 7년, 쉰여덟의 나이에 아무런 구애됨이 없이 보내온 이 한점의 작품 앞에서 모두 경탄했다.
예전의 문학성 짙은 산 달 구름 새 항아리 등의 형상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그냥 점들의 얼룩일 뿐인 완벽한 추상으로 변모될 줄 아무도 몰랐다. 미련없이 일체를 벗어버린 그 허심탄회한 마음의 경지에 경의를 보내면서, 70년대를 풍미할 한국회화의 또다른 ‘가능성의 바다’를 본 것이다.
200호나 되는 큰 화폭의 뒷면에 적은 김광섭(金珖燮)의 시 ‘저녁 에’, 그리고 그 마지막 구절을 따서 제명으로 삼은 이 작품의 시적인 함축과 여운. 오랜만에 영혼의 풍요로운 숨결이 흘러 나오는 명작을 만난 것이다.
저녁에
김광섭
저렇게 많은 중에서
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.
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
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.
밤이 깊을수록
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
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.
이렇게 정다운
너 하나 나 하나는
어디서 무엇이 되어
다시 만나랴.
김광섭
저렇게 많은 중에서
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.
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
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.
밤이 깊을수록
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
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.
이렇게 정다운
너 하나 나 하나는
어디서 무엇이 되어
다시 만나랴.
이 담백하고 편안한 푸름의 바다. 영롱한 별,푸른 점들의 화음. 화면 전체 를 채우고 있는 푸른 단색조의 점화(點畵)는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되는 자유로운 평면이 되어 그림의 시원에 가 닿는다.
하염없이 점을 찍어 가면서,때로는 고국에 있는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과 떠오르는 산천들, 밤하늘의 별들을 생각하며 한 점 한 점의 필획을 찍었다.온갖 흐르는 것은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 바다에 이르고,바다가 되어서는 ‘한 가지 맛’을 지닌 무차별의 광대무변한 성품을 지니기 마련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