성령님은 언제 근심하시는가?
1. 그분의 인격을 존중해 드리지 않을때 근심하신다.
우리와 같이 그분도 '근심'하심, 즉 인격을 가지고 계심.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알아가고 관계하고 사랑하듯, 성령님과 기계적이고 딱딱한 관계가 아닌 그분을 인격적인 존재로 인지하고 인격적으로 존중 해 드려야 함.
그분도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과 같이 나의 관심과 사랑을 마땅히 받으시며 나와의 소통을 원하는 분임.
2. 그분의 기능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을때 근심하신다.
'보혜사'라는 말은 헬라어로 "피라클레토스" 이는 아래 두 단어의 합성어임.
+ 피라:전치사로써 '곁에', '나란히'라는 뜻
+ 클레토스: '부르심을 받은이' 라는 뜻
= 부르심을 받아 내 곁에 계시는 분
이 단어는 세가지의 의미로 해석됨
: helper 도우미, counselor 상담자, comforter 위로자
성령님 께서는 대충 나와 노닥거리려 이 땅가운데 오신게 아님. 그분은 할 일이 있으심; 나를 도우시고, 상담하시고, 위로하시기 위해 오심.
내 삶가운데 그분께서 마땅히 행하셔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시도록 해야 함.
3. 우리가 이웃에게 상처줄때 근심하신다.
에베소서 4장 30절은 29절부터 연결되어 있음. 덕의 말로 타인에게 은혜를 끼치지 않고 더러운말로 상처줄때에 그 타인만이 아닌 성령님께서 아파하심. (뿐만 아니라 그 전 구절들을 통해 분을 죄로키우고, 물질을 탐욕하는 모습에 대함등 성령님께서 아파하시는 행위를 생각해 볼 수 있음)
구원의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다. (인치다: 가축을 소유 한 주인이 소유권을 주장하던 행위) 에베소서 초반에서 이미 강조된 '은혜로 구원받아 주의 자녀가 된 점'을 30절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.
나의 의지와 인격으로는 4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윤리와 도덕적 삶의 실천이 힘듦을 깨닫게 된다. 그것을 아신 주님께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으니 당신 안에서 하시라고 소유권을 다시한번 언급하시며 성령님의 도우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것.
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않고 그분과 소통하는 삶을 사도록 노력하는 것은 기독교인에게 있어 필연적이다.
참고: 분당우리교회